[충청리뷰 언론기고] 여름을 시원하게 나려면(7월 1주차)

관리자
발행일 2019-07-23 조회수 143



여름 나기가 쉽지 않다. 더위도 문제고, 끈적한 습기도 문제다. 이 두 가지가 합쳐지는 것이 우리나라 여름을 지배하는 북태평양 고기압의 특징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북태평양 고기압이 여름의 한반도를 장악한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란 것이다. 그래서 한반도에 사는 우리는 후텁지근한 여름날씨에 익숙하고 여기에 맞는 생활 및 주거양식을 정착시켜 왔다. 그 속에서 여름을 50번 넘게 맞았는데도 숨이 턱턱 막히는 도심의 열기와 무더위는 잘 익숙해지지 않고 갈수록 힘들다. 이 힘든 여름을 어떻게 넘길 것인가?
한 여름 도심의 길에 나가면 열기가 확 끼쳐 올라와 숨이 턱하고 막힌다. 바닥에서 올라오는 아스팔트 열기, 건물 벽에 내뿜는 열기, 게다가 냉방기 실외기 곁을 지나치기라도 하면 화까지 올라온다. 자기들 시원하자고 열기를 행인들에게 떠넘기다니. 그래도 요즘은 실외기 뜨거운 바람이 행인에게 직접가지 않도록 방향전환판을 붙여 뜨거운 바람이 위로 가서 조금 낫다. 그런데 이번에는 좁은 길에 주차된 차가 통행을 어렵게 할 뿐만 아니라 열까지 품어낸다. 햇볕에 달궈진 뜨거운 철판으로도 부족해 차량 냉방기 열기까지. 이렇게 되면 도심을 걷는 것은 수행이거나 고행이다. 건물 안과 차 안에 있는 사람들을 곱게 봐주기 힘들다.
그러다 건물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상황이 역전되었다. 너무 시원하고 쾌적하다. 어느새 툴툴거림은 사라지고 냉방기 찬바람 혜택을 만끽하는 수혜자가 되었다. 나는 이제 거리에서 열기의 삼중 사중 테러의 피해자에서 가해자가 되었다. 아! 한반도의 여름이 우리를 여러 가지로 힘들게 한다. 뜨거운 여름철 한반도에서 사는 우리는 단지 볼 일 때문에 거리로 나갔다 다시 건물 안으로 들어갔을 뿐인데, 서있는 위치에 따라 가해자에서 피해자로, 피해자에서 가해자로 수시로 전환된다. 그렇지 않아도 더워서 힘든데, 윤리의 문제까지 제기하다니.
건물에 들어서서 밖을 보니 파란 하늘에 흘러가는 흰 구름과 태양이 시원해 보인다. 내가 시원하니 내 눈에 보이는 풍경도 그렇게 보인다. 그러나 밖에서 걷는 사람은 땀을 뻘뻘 흘린다. 그래 이건 착각이다. 건물 안에 설치된 TV에서 나오는 뉴스에서 여름철 냉방수요 급증으로 전력예비율이 한 자리수로 떨어져 위기여서 전력설비를 증설해야 한다고 한다. 내가 좀 시원하게 지내는 것이 우리 사회를 위태롭게 한단 말인가? 내가 그렇게 전기를 많이 쓰는가? 나 때문에 땀을 더 많이 흘리고 걷는 행인에게 미안한 것으로도 모자라 국가적 위기마저 책임져야 하다니!
그런데 전기가 부족할지도 모른 것이 냉방기를 켠 채 문 열고 영업을 하는 가게와 여름철 무더위를 이기지 못해 냉방기를 켜고 지내는 가정들의 책임인가? 우리나라 국민들이 전기를 많이 쓴다고 한다. 2013년 1인당 전기소비량이 OECD평균이 7420kwh인 반면 우리나라는 9703kwh로 8위에 해당한다. 미국만 빼고 일본, 독일, 프랑스, 영국보다 높다. 그리고 전기소비 증가율도 대부분 OECD 다른 나라들은 감소추세에 있는데, 우리는 2000년 이후 년 평균 4.3% 증가하고 있다. 1인당 전기소비량 수치는 국가 전체(가정, 산업, 공공, 상업) 전기소비량을 전체 인구로 나눈 것으로, 누가 전기를 많이 썼는지 알 수 없다. 즉 전력예비율이 낮아진 것이 누구의 책임인지 알 수 없다.
진실을 알기 위해서는 통계를 더 자세히 들여다봐야 한다. 주택용 전기 1인당 소비량을 보면 우리나라가 1274kwh로 OECD평균보다 1000kwh 정도나 낮고, 순위도 26위로 아껴 쓴다는 일본(2240), 독일(1657)보다 더 적게 쓴다. 저렇게 많이 쓰는 일본 독일이 아껴 쓴다고 하면, 우리나라 국민들은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불을 끄고 어둠 속에서 산다고 해야 하나? 이들 나라는 우리보다 전기요금이 비싼 데도 우리보다 많이 쓴다. 우리나라 국민들이 전기요금이 싸서 많이 쓴다는 것은 거짓이었다. 전기요금이 싼 데도 아주 아껴 썼다.
여름을 시원하게 나는 여러 방법이 있지만 도시화율이 90%가 넘은 지금에서는 과거의 전통적 방법과 생태적이고 환경적인 방법으로 여름을 시원하게 나는 것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그래서 냉방기 보급도 늘었고 사용 시간도 늘었지만, 전기 사용량이 늘어난 것이 국민들 책임이 아니다. 주택용 전기 사용 비중이 13%(상업용 21.9%) 정도이고, 산업용 56.3%이다(2017년). 만약 가정용 전기소비가 배로 증가한다고 하면 13% 늘어 26%가 된다. 절대적으로,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으로, 여전히 미국(37%), 일본(32%)보다 낮다. 그리고 국민들이 가정에서 아껴 50%를 줄인다고 하면(극도의 절약이다) 6.5% 정도인데, 산업부문이 전기소비효율을 10%만 높여도 가정이 극도의 절반 절약으로 아낀 정도에 해당하는 5.6% 정도를 줄일 수 있다. 산업용이 주택용처럼 절반을 줄인다면 주택 절약분의 4배가 넘는 28% 정도이다. 그리고 산업부문이 전기를 아끼는 것은 단순히 절전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기술발전으로 원가절감 및 그로 인한 가격 경쟁력 강화, 제품경쟁력도 강화되어 국가경제 발전의 견인차 역할도 더 강화되고, 환경과 사회, 자본 자신 모두에게 도움이 된다.
우리가 여름을 시원하게 나는 방법이 타인에게 더위를 전가하지 않고, 경제도 발전시키며, 환경에 부담도 최소화하며, 에너지 소비의 양극화도 해소하는 것을 동시에 같이 할 수 없을까? 그것은 대기업과 에너지 다소비 산업구조 중심의 경제성장 정책을 지속하는 한, 불가능할 것이며, 환경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지속 가능하지 않다. 자본을 충분히 축적했고 전기소비효율을 높일 수 있는 기술여력도 충분하기에, 대기업은 이제 그동안 누린 사회적 혜택에 대한 보답으로 기업의 사회적 의무를 다해야 할 것이다. 정부와 의회도 변화된 현실에 맞게 제도와 법을 개선하고, 사회적 공기로써 언론도 사회정의의 관점에서 통계 숫자 넘어 진실을 더 적극적으로 말해야 한다. 그래야 전체적으로 전기소비를 줄이면서도 모든 국민이 여름을 좀 더 시원하게 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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