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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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리뷰 언론기고] 동네 두부가게는 왜 사라졌나

    사회적 관계로서 지역농산물   ‘경제성장’과 ‘편리함’의 결과로 지역과 농업, 농촌의 희생과 해체가 있었다고 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이들을 총체적으로 인식하여 문제 해결책을 찾는 것이 아니라 이 둘을 별개로 인식하여 양립 가능한 것처럼 여기고 있다는 것이 근본적인 문제라 했다. 지역과 농업, 농촌의 문제를 지금과 같은 효율성, 양적 성장의 이데올로기 속에서도 해결 가능한 것처럼 말하는 것은 원인을 그대로 두고 결과를 고치겠다는 것이니 이는 미봉책이며, 증상만을 완화시키는 대증요법에 불과한 것이다. 단어나 개념은 가치중립적이지 않다. 그 단어 속에는 이미 사회적 맥락, 권력관계, 생산관계 등 그 사회의 지배적 이념이 반영되어 있다. 우리가 식품을 살 때 중요하게 보는 ‘편의성’이라는 단어는 가치중립적이지 않다. 편의라는 것은 편하고 좋다는 것을 말하는데, 이것이 뭐가 나쁘냐고? 당연히 문제제기할 수 있다. 맞다. 이것은 ‘좋다, 나쁘다’의 문제가 아니라 ‘선택의 문제’이다. 이 말의 의미는 선택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선택으로 인해 일련의 과정과 결과까지도 선택한 것이며, 그래서 시간적으로 한참 후에 발생하는 결과까지 감당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 편리함을 선택하면 이후 그에 따른 필연적인 부작용도 감당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래’의 그 부작용이 싫다면 ‘지금’의 이 선택을 하지 말자는 의미다. ‘현재’의 부작용을 보고 ‘과거’의 선택을 되돌릴 수는 없겠지만, 현재의 선택을 달리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편의성 개념이 내포하고 있는 일면적 인식과 선택과 결과 사이에 가로 놓인 ‘시간’이라는 장애요인을 극복하기 위해 이런 역사적이고 총체적 인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선택이라는 것이다. 힘든 것과 좋은 것을 함께 하는 세상을 살 것인지 아니면 좋은 것만, 꽃길만 걷고 힘든 것과 나쁜 것, 진흙길은 밖으로 타자에게 떠넘길 것인지? 대형쇼핑몰에서 좀 편하게 사는 것이 뭐가 잘못됐냐고 묻는다. 다시 말하지만 잘못되지 않았다...

2019.12.18.